독우(督郵)의 벼슬은 한대에 군수(郡守) 밑에 있으면서 현의 관리를 점검하는 직위였다. 품계는 높지 않았지만 직권은 컸다. 후한말에 관리의 부패는 묵과할 수 없을 정도였으므로 뇌물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다. 독우도 항상 직권을 내세워 현장(縣長)이나 현위(縣尉)에게 뇌물을 요구하였다.
삼국지연의의 제2회에는 유비가 안희현(安喜縣)의 현위(縣尉)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연히 독우가 시찰을 와서 권력을 내세워 뇌물을 요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뇌물을 주지 않자, 독우는 유비가 백성을 해치고 있다는 죄를 덮어씌웠다. 유비는 몇 번이고 머물고 있는 곳을 찾아가 해명을 하였다. 그러나 독우의 태도는 방자함 그 자체였다.
“당신, 황족을 사칭하여 있지도 않은 공적을 내세울 생각인가?”
이렇게 말하며 즉시 추방하겠다고 위협했다. 유비는 현의 관리들과 대책을 강구해 보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것을 안 장비는 크게 노했다. 눈을 부라리며 강철 같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말에서 내리기 무섭게 숙사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나서 장비가 독우를 채찍질하는 것이다.
독우를 채찍질하는 이야기는 비난의 어조가 담긴 자세한 묘사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나관중은 장비의 난폭하고 급한 성격, 악을 미워하여 원수로 여기는 모습을 잘 묘사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 정사의 <유비전(劉備傳)>과 배송지(裵松之)의 주(注)에서 인용하고 있는 『전략(典略)』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유비가 안희현의 현위에 부임했을 때, 조정에서 공적에 의해 등용된 사람을 재심사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유비는 자신도 거기에 해당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그 때 독우가 순시를 왔다. 유비가 만나러 갔지만 독우는 꾀병을 핑계로 만나 주지 않았다. 화가 난 유비는 관청으로 돌아가서 부하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숙사로 쳐들어가 독우를 붙들어 묶고 채찍으로 200번이나 쳤다. 게다가 ‘태수의 직접적인 밀명이다’고 외쳤다. 그나마 독우가 목숨을 구걸했기에 그대로 두고 떠났던 것이다.
이외에도 삼국지연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많은 차이가 있다. 사서(史書)의 기술은 우선 독우를 붙들어 묶고 현의 경계까지 와서 신분을 나타내는 끈을 풀어 독우의 목에 걸은 뒤에 채찍질을 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지연의에는 먼저 독우를 채찍질하고 나서 신분을 나타내는 끈을 풀었다고 되어 있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고치고 있으며 거기에 다시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비가 장비를 말렸다는 식으로 픽션을 가미하고 있다.
요컨대 역사적 사실은 독우를 채찍질한 사람은 유비이지 장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관중은 삼국지연의를 창작함에 있어 이야기를 뒤섞고 접목시켜 유비의 신변에 일어난 일을 장비에게 전가시키고, 이에 의해 유비를 제왕의 자손에 어울리는 관대·인자·온화한 이미지로 그려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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