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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관우는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사용했을까

행운가득하루 2023. 1. 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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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제1회에서는 유비·관우·장비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는다. 생사를 함께하며 서로 협력하여 위기에 대처하고, 위로는 나라에 충성하며 아래로는 백성을 재난에서 구할 것을 맹세한다. 그 후 우선 준마를 사고, 유비는 도공에게 명해 쌍고검(雙股剑)을 만들고, 관우는 무게 82근의 청룡언월도, 별칭 냉염거(冷艶鋸)를 만들었다고 쓰여 있다.

 

20여년에 걸쳐 계속되는 정벌의 과정에서 독자는 청룡언월도에 대해서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용맹한 관우는 평생 전장을 누볐다. 이 청룡언월도에 의해 안량(顔良문추(文醜)는 목숨을 잃었고, 다섯 관문을 지나는 장면에서는 조조(曹操)의 부하 장수 여섯 명을 베었다. 이밖에도 청룡언월도에 희생된 사람은 부지기수이다.

 

·당 이후 관우가 우상화됨에 따라 청룡언월도는 비범한 무기로 여겨져, 관제묘(關帝廟)에는 특제의 청룡언월도가 관우상 앞에 놓여지게 되었다. 연극에서도 관우 혼자만 이 무기를 쓸 수가 있다.

 

민간 전설에 나오는 청룡언월도는 더욱 더 그럴듯한 치장이 되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관우는 마음에 드는 무기를 손에 넣기 위해서 도검 제작의 명인 몇 명에게 부탁하여, 두 달에 걸쳐 강철을 담금질해서 겨우 푸른빛의 강철 대도(大刀)를 만들었다고 한다. 장인들은 이것으로 다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관우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더 담금질하게 했다.

 

담금질은 다시 한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달이 하늘에 높이 뜨던 날, 장인들이 불속에서 대도를 꺼내어 담금질하려고 하자 도()에서 하늘을 향해 한 줄기 빛이 솟았다. 바로 그 때 하늘에서 한 마리 청룡이 내려와 빛에 맞았다. 용의 피가 도 끝에 방울방울 떨어지고 우레와 같은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놀라서 도망쳤다.

 

관우가 다가가서 보니 맑고 투명하여서 마치 보석처럼 보이는 칼이 땅 위에 세워져 있었다. 이 보도는 반달(偃月)을 닮았고, 청룡의 피로 담금질해서 완성된 것이라 하여, 청룡언월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민간에서는 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관우의 오른팔인 주창(周倉)도 청룡언월도 한 자루를 가지고 있었다. 관우의 보도는 조조로부터 비단 군복이 보내어졌을 때 망가져 버렸기 때문에 관우는 한 계책을 생각해 낸다. 그는 주창의 사소한 과실을 책망해서 그에게 청룡언월도로 보상하게 했다. 그 이후 주창의 수중에서는 청룡언월도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의 말이나 민간 전설 모두 그냥 믿어버리기에는 어딘가 어색하다.

 

 

그럼 관우는 청룡언월도를 사용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진수의 정사나 다른 역사책에도 명확한 언급이 없다. 정사에서는 두 군데에서 관우의 무기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하나는 <관우전(關羽傳)>에 나오는 안량을 벤 대목이다. 관우는 안량의 깃발과 수레를 멀리에서 바라보더니 말을 채찍질 해 다가갔다. 원소의 대군이 보는 앞에서 안량을 찌르고 그의 목을 베어 돌아왔다. 원소(袁紹)의 여러 장수들은 너무나도 강력한 관우의 무위(武威)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 중에 관우를 상대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하나는 <노숙전(魯肅傳)>에 나오는데, 관우와 노숙(魯肅)이 익양(益陽)에서 회견하는 단도부회(單刀赴會)의 대목이다. 서로 병사와 말을 백 보 떨어진 곳에 머무르게 하고, 장군만이 대도 한 자루를 지니고 회견했다. 관우는 도를 들고 일어섰다

 

남조(南朝) 양나라의 도홍경(陶弘景)이 저술한 고금도검록(古今刀劍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관우는 선주(유비)에게 총애를 받아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몸소 도산(都山)의 철을 캐서 도 두 자루를 만들고 만인적(萬人敵)이라는 이름을 새겼다. 전투에 패하여 그는 도를 아끼는 마음에 물 속에 던졌다

 

이상의 기술에서 관우가 사용한 무기는 확실히 도이다. 그러나 그 도가 자루가 긴 대도였는지, 아니면 청룡언월도라 불리우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성도(成都) 무후사(武候祠) 박물관의 담량소(譚良嘯)의 견해로는, 관우의 도는 청룡언월도가 아니며 무엇보다도 우선, 관우는 청룡언월도 따위는 본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고대의 병기는 크게 장단(長短), 원사(遠射), 방구(防具) 등의 종류로 나뉜다. 예컨대 검이나 박도(朴刀), 비수(匕首) 따위는 단병기이고, ((() 따위는 장병기이다. (()는 주로 멀리 쏘는 무기이고, ((갑옷은 방어 도구이다. 삼국 시대에는 아직 긴 자루가 달린 도는 출현하지도 않았다.

 

주위(周緯)가 지은 중국병기사고(中國兵器史稿)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한대(漢代)에는 극()의 제작이 성행하였고, ()가 그 다음이었다곧 당시의 장병기는 극()과 모()였다는 것이다.

 

후한서(後漢書)삼국지(三國志)에는 긴 자루가 달린 도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없다. 다만 장극백만(長戟百萬)이라든가 ()을 얹어서 모()를 집는다와 같은 기록이 있을 뿐이다. 한대 유적지에서도 긴 자루가 달린 대도는 출토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창이나 대도가 장병기가 된 것은 당대부터이다.

 

그럼 사서 속 관우가 사용한 칼은 어떤 무기인가.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은 단도이고, 안량을 찌른 무기는 당시 유행하던 모()일 것이라고 담량소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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