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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도원결의(桃園結義)에서 유비가 맏형이 맞을까

행운가득하루 2022. 12. 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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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三國志) 유비&middot;관우&middot;장비

 

중국 문학사에서 만약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 같은 소설을 결의소설(結義小說)이라고 일컫는다면, 이러한 소설의 흐름은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당의 전기(傳奇) 소설 가운데 <외강채(瓦崗寨)>의 이야기, 설악전(說岳傳)의 이야기<우고(牛皐)>, <탕희(湯懷)>, <악비(岳飛)>의 이야기, 삼협오의(三俠五義)<오서추의(五鼠聚義)>의 이야기들은 모두 찬란히 빛나는 것들이다.

 

이와 같이 결의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민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유비·관우·장비의 결의다. 사람들은 도원결의를 의형제의 정을 표현하는 대명사로 여기고 있을 정도이다.

 

삼국지연의의 제1, 도원결의의 이야기에는 유비·관우·장비 세 사람이 복숭아꽃이 만발한 정원의 숲속에서 소와 양을 바쳐 제사를 지내고 하늘에 맹세하여 의형제를 맺는다. 이 때 나이 순으로 유비를 맏형으로 받들고, 관우가 그 다음이고, 장비는 막내가 된다. 이와 같다면 유비는 아주 쉽게 맏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 전설에서는 유비·관우·장비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을 때, 누가 형이 되고 누가 아우가 될 것인가로 한바탕 옥신각신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처음에는 세 사람 모두 형은 되어도 아우가 될 마음은 없어서 나이가 많고 적은 것으로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서로 몇 년, 몇 월, 몇 일에 태어났는가를 이야기했다.

 

그 결과 세 사람 모두 같은 연, , 일을 대었다. 이 때 유비는 태어난 시()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장비가 가장 먼저 자기가 태어난 시는 새벽녘이었다고 하니, 관우는 나는 더 빠르다. 태어난 시는 첫 닭이 막 울었을 때였다라고 했다. 유비는 한술 더 떠 그 전 컴컴한 한밤중이었다고 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장비는 자신이 속아서 막내 동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말했다.

 

안 돼. 안 돼! 둘 다 거짓말 마! 이건 없었던 거야.”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라고 유비가 물었다.

 

장비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큰 나무가 눈에 띄었다. 나무 오르기라면 저들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무 오르기로 정하는 것이 좋겠다.”

 

장비는 이렇게 말하고, 유비와 관우의 동의도 얻지 않은 채, 나무에 달려들어 단숨에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관우는 어쩔 수 없이 이에 응했지만, 그는 줄기 중간 정도까지 오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가운데라면 위로는 형이 있고 아래로는 아우가 있으니, 이것으로도 그다지 나쁘진느 않다고 내심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유비는 서두르지도 않고 침착하게 나무 밑둥에 다가서더니, 선 채로 나무를 부둥켜 안았다.

 

장비는 의기양양 하게 외쳤다.

 

둘 다, 형님이라 불러!”

 

유비가 말했다.

 

서두르지 마! 자네에게 묻겠는데 이 나무는 뿌리가 먼저인가, 아니면 줄기가 먼저 자란 것인가

 

물론 뿌리가 먼저 있었지.”

 

바로 그거야. 그러니 우선 나라는 사람이 있고서야 자네들이 있는 것이네.”

 

장비는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다. 이의를 제기하려고 해도 이미 한 번 약속을 스스로 깨었고, 이번에는 자신이 제안한 것이었기 때문에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우도 유비의 지혜가 뛰어난 것을 보고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세 사람은 의형제를 맺었고, 유비·관우·장비 순으로 서열이 결정된 것이다.

 

민간의 전설이 무엇을 근거로 하고 있는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상의 전설에서 한 가지 정보는 얻을 수 있다. 곧 유비·관우·장비의 형제 순서는 나이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유비가 최연장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서(史書) 기록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도원결의에서 최연장자는 유비가 아니라 관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비의 나이는 삼국지연의에서는 중평(中平) 원년(184) 도원결의 때 이미 28세였다. 정사의 <선주전(先主傳)>에는 태어난 연도는 없고, 장무(章武) 3(223)에 죽었을 때 63세로 기록되어 있다. 죽은 사람의 나이는 만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에 근거하여 거슬러 올라가면 유비가 태어난 해는 후한의 환제(桓帝) 연희(延熹) 4(161)이 된다. 따라서 중평 원년에는 24세가 되며, 28세는 아니라는 결과가 나온다.

 

관우의 나이는 정사의 본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장비전(張飛傳)>에는 관우는 장비보다 몇 살 연상으로, 장비는 관우를 형으로 모셨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전정방(錢靜方)소설총고(小說叢考)에 따르면, 청나라의 강희(康熙) 연간에 관우의 고향에서 출토퇸 관후조묘비기(關候祖墓碑記)에 관우는 후한의 환제 연희 2(160) 624일에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여림(柯汝霖)관공연보(關公年譜)에는 관우는 실은 유비보다 한 살 위였다라고 쓰여 있다. 관우는 건안(建安) 24(219)에 죽었으므로 향년 60세인 것이다.

 

장비의 나이에 대해서 삼국지연의에서는 55세에 죽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221년에 이미 죽었다는 설이나, 관공연보(關公年譜)에 나온 장비는 유비보다 네 살 연하라는 설을 가지고 추리해 본다면, 장비는 57세에 죽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결국 유비·관우·장비 세 사람이 도원에서 의형제가 되었을 때 나이는 관우 25, 유비 24, 장비 20세이다. 그러므로 맏형은 관우이지 유비가 아닌 것이다. 삼국지연의의 설은 사서(史書)은혜가 형제와 같다라고 하는 기술을 근거로 한 상상이며, 억지로 갖다 붙인 것이어서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은 나관중의 삼국지가 정확성에 문제가 있다는 한 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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