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유비·관우·장비의 고향은 어디일까
삼국지연의에서 유비는 탁현(涿縣)은 지금의 하북성(河北省)에 속해 있다. 이 현의 서북쪽에 옛날에는 탁수(涿水)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하북성현명고원(河北省縣名考源)』에 「탁군(涿郡)·탁주(涿州)·탁현(涿縣)의 이름은 모두 탁수(涿水)에서 유래했다」고 쓰여 있다.
한나라 때 탁현의 행정 관청은 지금의 하북성 탁현에 있었다. 탁현의 대수루상촌(大樹樓桑村)이 유비의 고향이라고 하며, 이 마을은 탁현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삼국지연의에서도, 민간 전설도 정사의 <유비전(劉備傳)>에 기록된 것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큰 뽕나무에서 이름을 지었다는 것도 사서(史書)의 기록과 일치한다.
그러나 유비의 사당인 한소열묘(漢昭烈廟)는 대수루상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탁현의 누상묘촌(樓桑廟村)에 있다. 이것은 왜 그럴까? 사서(史書)에 고증은 없어도 유비의 고향은 아마 대수루상촌이 아니라, 누상묘촌이라는 정보를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대수루상촌에 관한 유비의 전설은 사서에서 갖다 붙인 것이 많기 때문이다. 유비의 고향은 아마 대수루상촌은 아닐 것이다.
탁현의 민간 전설에 의하면 한소열묘(漢昭烈廟)는 본디 대수루상촌에 지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목재와 기와를 실은 수레가 누상묘촌에 이르렀을 때, 비바람이 일고 천둥이 쳐서 길이 막히고 수레가 부서졌다. 게다가 명당을 알아보는 풍수가가 누상묘촌의 풍수가 좋아서 천지신명이 멈추게 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당을 누상묘촌에 세우는 것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삼국지연의나 사서에서는 탁현이 유비의 고향이라고 하지만, 구체적인 지점이 어디인가하는 것은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것이다.
그럼 관우의 고향은 어디일까?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역사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 삼국지연의 제1회에서 관우는 스스로 「하동(河東) 해량(解良)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정사의 <관우전(關羽傳)>에는 「하동(河東) 해(解)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즉 한 대의 하동군(河東郡) 해현(解縣) 사람이다.
삼국지연의에서 말하는 해량(解良)이란 해량(解梁)으로, 지방지나 정사를 살펴보면 해량(解梁)은 금대(金代)에 설치된 군의 이름이다. 삼국지연의의 서술은 금대의 지명을 이용하여 한 대 사람의 본적지를 서술한 것이어서 얼토당토 아니한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원화군현지(元和郡縣志)』에 따르면 해현이란 산서(山西)의 해현(解縣), 지금의 운성시(運城市)의 행정구역 내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관우의 고향은 운성시의 남서쪽으로 약 12km에 위치한 상평촌(常平村)이다. 여기에는 관우묘(關羽廟)와 청의 건륭(乾隆) 연간에 세워진 비석, 즉 관성고리비(關聖故里碑) 등이 있다. 그렇다면 이 설은 믿을 만한 것일까?
장비의 고향에 대해서 나관중은 명확하게 서술하고 있지 않다. 막연하게 「대대로 탁군에 살았다」라고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정사의 <장비전(張飛傳)>에도 장비는 「탁군 사람이다」라고 쓰여 있다. 장비와 유비는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탁현현지(涿縣縣志)』에서 장비의 고향은 「탁현 남서의 도장(桃莊)에 있다」라고 쓰여 있다. 도장(桃莊)은 한나라 때 마을이다. 장비가 여기에서 태어난 까닭에 일반적으로 장비점(張飛店)이라 불리우고 있다. 민국(民國) 초년(1911년) 탁주 지사는 장비라고 이름을 막 부르는 것에 예의에 어긋난다고 하여 충의점(忠義店)이라 개명하도록 명령했다.
충의점은 잘 정돈된 대촌락이며 마을에 장비정(張飛井)이라 불리우는 우물과 한장환후고정비기(漢張桓候古井碑記), 한장환후고리비(漢張桓候故里碑) 등의 비석이 있다. 이 마을의 유적은 송·원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많고, 특히 삼국지연의에서 나오는 장비의 이야기에 덧붙여진 것이 많다. 그렇지만 탁현의 도장(桃莊)이 장비의 고향인 것은 믿어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과 같이 장비의 고향은 접어 두더라도, 유비와 관우의 고향에 대해서는 삼국지연의에서 서술한 바와 사서의 기재와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유비·관우·장비의 원적과 고향을 보다 더 명확하게 하는 것은 역시 필요하다.